아이큐 210으로 세계 4위라는 기록으로 유명한 김웅용 교수가 연일 방송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9월 29일에는 여유만만에 출연해서 천재로 살아온 화려한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다음날인 9월 30일에는 퀴즈 프로그램인 '1대100에' 출연해서 한 살 때 천자문을 뗐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김웅용 교수는 2KBS 2TV의 '1대100'에 출연해 100명과 경쟁하며 5천만원의 상금 획득에 도전햇는데요. 김웅용 교수는 한글을 언제 뗐느냐는 질문에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한 살 지나서 읽었다. 천자문도 그 때 같이 뗐다. 한글을 읽으니까 자연스레 천자문도 함께 익힌 것이다"라고 말해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죠.


1대100을 진행하는 한석준 아나운서가 "세 살 때 미적분 문제를 풀고, 책까지 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김웅용 교수는 몹시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IQ 210 천재의 힘겨웠던 NASA 생활

 

이날 방송에서는 또 세계에서 아이큐가 가장 높은 사람들 중 한 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김웅용 교수가 NASA에서 보냈던 힘겨운 생활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김웅용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인명사전인 ABI의 21세기 위대한 지성으로도 뽑힐 만큼 아이큐가 높은데요. 세 살에는 미적분을, 네 살에는 대학에서 청강 수업을 받았으며, 천재들만 갈 수 있다는 NASA에서 청소년기를 보낼 만큼 천재적인 지능과 더불어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한석준 아나운서가 "여덟 살에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열다섯 살까지 NASA에서 일하셨다. 반항도 할 나이고 사춘기도 올 나인데 친구도 없고 또래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보내셨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김웅용 박사는 "정말 힘들었다. 휴일에는 쉬어야 하는데, 그곳의 동료들은 술을 한잔 하러 간다. 근데 저는 미성년자니까 가지 못했다. 운동을 하면 동료들끼리 내기를 하니 안 껴주고, 계속 동료들과 멀어졌다. 결국 대화 없이 몇 년이 흘렀고 슬럼프가 왔다"고 밝혀서 시청자들의 탄식을 샀습니다.

 

 

 

아이큐 210 천재 김웅용 교수의 생활

 

한편 이날 김웅용 교수가 방송에 출연하면서, 과거의 발표에 인류 역사상 가장 IQ가 높은 10명 중 4위에 김웅용 교수가 올랐던 이력이 다시금 화제가 되었습니다.

 

김웅용 교수는 생후 80일에 걸어 다니고 생후 6개월 만에 간단한 문장을 말할 줄 알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세 살 때는 우리말은 물론 영어와 독일어, 일본어를 읽을 줄 알았고, 다섯 살 때 적분 문제를 척척 풀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다섯 살에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과학교육과에 입학한 김웅용 교수는 여덟 살에는 건국대학교 이공대학 문리학과를 수료했고, 1973년 열한 살에 미항공우주국 나사로 가서 1978년까지 NASA의 선임연구원과 책임연구원으로 활동을 했다고 하죠.

 

김웅용 교수는 열다섯 살이던 1978년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소망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충북개발공사에 근무하면서 연세대, 성균관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김웅용의 진실이라는 말이 떠돌아 다니고 있죠. 사실 김웅용 교수는 나사 연구원을 하러 미국에 간 적도 없고 천재도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짧게 말하면 김웅용 교수의 아버지가 모든 사람을 속였다는 것인데, 이 주장의 진위가 밝혀진 적은 없습니다. 역사상 머리가 가장 좋은 사람 중의 하나라는 사람이 퍽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보니 생겨난 루머가 

 

한편 김웅용 교수와 머리 좋기가 종종 비교되는 송유근 군이 있죠. 아직 청소년인 종종 송유근의 아이큐는 187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김웅용 씨가 교수로 재직 중인 신학대학교는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4년제 사립대학교로, 김웅용 씨는 신한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적 천재 김웅용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웅용 교수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